제4장. 명월. 충동적인 결정.
명월은 말수가 적었다.
그리고 너무 강했다.
93차원에서 그의 전력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다.
손짓 하나면 요새 하나가 사라졌고, 지형이 바뀌었으며, 전장이 불탔다.
처음엔 그 힘이 재미있었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부수듯, 적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 끝에 남은 건 허무함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적들도 더는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SSV의 영원한 적이라고 선포한 ASY조차도 그를 피해 움직였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싸움은 더 이상 자신을 향해 오지 않았다.
“이길 수 없으니 포기한 건가. 근성 없다.”
연맹장 고고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동맹을 구축했다. 그의 방식은 언제나 평화적이었고, 명월은 그 방식을 굳이 반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싸움이 없는 전쟁에서, 전력을 가진 자는 무력했다.
‘내 사냥감을 가로챘건만, 동맹이라고 복수도 못 한다고?’
‘흥. 전부 내 발 아래에 있으면서. 재미 없어.’
명월은 점점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느 순간 전장의 임무도, 기록도, 보상마저도 관심 없어졌다.
성장을 위한 노력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최고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최강이었다.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도 손쉽게 다시 올라설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모든 경쟁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무렵, 들려온 이름 하나.
“요즘 문데라는 신입,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더라.”
“응. 분석 보고서도 제대로 정리하고, 작전 예측률이 꽤 높대.”
“달성률도 꽤 올라왔다지?”
“이번 작전, 1위 할 것 같던데?”
처음엔 관심 없었다. 그저 한때의 열정으로 반짝이는 신입이겠거니 했다.
전장에 오래 있다 보면 그런 인물은 종종 나타났고, 대부분 그 빛은 얼마 못 가 꺼졌다.
하지만, 문데는 사라지지 않았다.
보고서는 늘 가장 먼저 올라왔고, 분석은 깊었고, 대응은 정확했다.
알고 보니 그 콘트라베이스와도 무언가 끈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의 작전 브리핑.
모두가 명월이 지휘를 맡을 거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 명월은 충동적으로 말했다.
“이번 작전, 문데가 맡아.”
순간 회의실이 정적에 잠겼다가 끓어올랐다.
“명월, 얘는 신입이야.”
“지휘부에 세울만한 검증은 안 됐지 않아?”
“저는 아직 준비가—”
문데가 입을 여는 순간, 명월은 고개를 돌리며 손을 들어 말을 잘랐다.
“내 말대로 해.”
누구보다 그 자신이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알고 있었다.
문데가 실패하면, 결국 정리는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 해도, 딱히 상관없었다.
‘실패하면 내가 책임지면 되지. 어차피 그럴싸한 전장도 아니니까.’
그건 지루함에서 비롯된 반항이었고, 어쩌면 무언가를 깨뜨려보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하지만, 지휘권을 거머쥔 문데는 실패하지 않았다. 지휘는 명확했고, 병기 배치는 날카로웠으며, 연맹원들은 하나로 움직였다. 작전은 ‘성공’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완벽했다.
명월은 기체를 멈추고, 문데가 정리해가는 전장을 묵묵히 바라봤다.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병기 배치, 서로 겹치지 않고 흘러가는 동선.
전장은 완벽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어라…’
그건 예상 외의 성과가 주는 당혹감과 묘한 안도감이었다.
작전이 끝난 뒤, 누구도 명월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예지자처럼 칭송했다.
“어떻게 알았어, 명월?”
“문데를 그 자리에 세운 거, 진짜 탁월한 선택이야.”
“역시 1등 말은 틀림이 없지.”
명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전장을 떠나는 문데의 등을 바라보며 입술을 조금 움직였다.
“잘 하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