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문데. 전투의 방식.
“UFS 소속, 핸콕입니다.”
공격자에 대한 단 한 줄짜리 보고였다. 그 이름 앞에서, 문데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결국 돌아섰구나. 하지만 선택한 곳이 UFS라니.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가 된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감정이 가슴 속을 휘저었다.
“현 시각부로 핸콕은 SSV의 적입니다. 모든 기지, 즉시 방어 전환하세요.”
짧은 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그 뒤를 따르는 건, 날카로운 경보음이었다.
SSV 전역에 폭격이 시작됐다.
하나, 또 하나. SSV의 기지들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연개소문 기지 전멸!” “스타체인저 제1기지 붕괴 확인!” “피포 후방 방어선 무너졌습니다!” “톤드, 기지 반파. 보호막 전개 중!”
연맹 내 강자들의 이름이, 구조 요청이 아닌 ‘피해 보고’로 속속 올라왔다.
문데는 무전기를 움켜쥐고, 응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신호도 돌아오지 않았다.
탱크는 단 하나였다.
44레벨 페르디난트-티거.
핸콕의 핵심 병기.
그것으로 그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그 누구도, 막아내지 못했다.
문데의 기지마저도.
“문데님, 제1기지 붕괴 확인… 항복 권고 드립니다.”
“…그럴 순 없어요.”
손끝이 떨렸다. 입술이 말라붙었다.
곧이어 핸콕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문데. 넌 자격 없어.”
단 한 마디.
그가 설명하지 않았던 수많은 감정이,
한 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한 전장을 찢는 웃음소리.
새하얀 기지 위에 현수막이 걸렸다.
뻔뻔하고, 유치하며, 형편없을 정도로 장난스러운 문구들.
누가 봐도 조롱이었다.
〈44렙 믿고 날뛰기〉
〈우리 형이 더 쎔〉
〈중2병중년아조씨〉
“……모해?”
문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지도를 확대했다.
각 거점마다, 누가 봐도 의도된 메시지가 박혀 있었다.
게다가 그런 기지 이름들은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문데가 시킴〉
〈핸콕엄마울어〉
〈페르디난트 못생김〉
문데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왜 이래…”
모해에게 무전이 연결되자마자 문데는 물었다.
“너… 뭐 하는 거냐.”
“형은 가만 있어. 이건 나랑 핸콕 형의 감정전이야.”
모해는 각 기지 위에 조롱을 새겼다.
30개가 넘는 멀티 기지를 전장 곳곳에 흩뿌렸다.
그 모든 이름이 비아냥이었다.
〈페르디난트 주차장〉
〈핸콕 보호막 준비중〉
〈불타는핸콕머리〉
30개가 넘는 욕설, 조롱, 그리고 조악한 풍자.
TOV 시절, 그는 그런 모해의 방식이 싫었다.
전술이 아니라 욕설과 조롱으로 물들어가는 채팅창.
그럴수록 그는 조용하고 정제된 질서를 더 원하게 됐다.
그래서 떠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해는 그때의 방식 그대로 핸콕을 조롱하고 있었다.
거칠고 유치한 말들, 조롱과 비꼼.
패드립과 농담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말들.
예전의 문데라면 고개를 저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등을 돌렸던 방식 속에서
지금은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싸움의 방식은 달라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만은… 같았던 거지.
문데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눈치챘다.
모해의 행동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었다.
그는 핸콕의 이동 경로를 정확히 예측했고,
모든 포인트마다 기지를 미리 배치해두었다.
감정의 발화처럼 보였지만,
실은 여론전이라 불러도 될 만한 절묘한 움직임이었다.
모든 ‘조롱 기지’는 병력이 없는 빈 농장이었지만—
그 위치는, 전략적으로 완벽했다.
“내 농장들이 불타는 건 싫지만, 어차피 빈 거라 상관없어. 정신 팔게 만들면 그새 탄약 다 닳거든.”
핸콕은 모해가 예측한 경로대로 움직였고, 모해가 목표로 설정한 기지까지 유도되었다.
병력도, 저항도 없었다.
단지 하나.
〈들어오세요, 성질 한 번만 내주세요〉
기지 입구에 걸린 문구였다.
모해가 그 문구를 유쾌하게 따라읽자,
지켜보던 상황실이 웃음으로 터져나갔다.
“정말 도착했어! ㅋㅋㅋㅋㅋㅋ”
“지금 그 기지 앞임 ㅋㅋㅋㅋㅋ”
모해는 피식거리며 또 다른 기지명을 띄웠다.
〈밥먹을 돈도 없니〉
〈대가리 폭발중〉
〈핸콕 성질머리〉
그는 병력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았다.
기지를 내줌으로써, 핸콕의 성급한 반응을 끌어내려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구.
〈핸콕이 이걸 보고도 참는다면 그건 클론〉
핸콕은 끝내 폭발했고, 마지막 기지를 공격했다.
곧바로 모해는 새로운 현수막을 띄웠다.
〈페르디난트는 울 때 조종 안됨 ㅠㅠㅠ〉
“그건 미끼였음 ㅋㅋㅋㅋ”
이건 싸움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문데는 머리를 감쌌다.
“형, 뭐하고 있어?! 지금이야!!!”
분노에 찬 핸콕이 모해의 기지를 두들기느라 정신없는 사이—
문데는 핸콕의 본진을 정조준했다.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의 반격.
유의미한 타격이 반복되자, 핸콕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격전이 끝난 그날 밤, 문데는 조용히 모해의 기지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이런 싸움은 원하지 않았는데.”
그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까지 싸워주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 켠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그는 모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수고했다. 근데… 다음부턴 조금만 줄여줘.”
그리고 주저하다가, 한 줄을 더 남겼다.
“그래도… 고맙다. 내가 못 하는 걸 해줬네.”
잠시 후,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형은 그렇게 강한데도 정작 싸울 줄은 모르는 것 같아. 싸워야 할 땐 멍하니 서 있더라.
그래서 내가 있는 거야.”
문데는 메세지를 천천히 마음속으로 곱씹어보다가
한 손으로 조용히 이마를 눌렀다.
방금 전에 불탔던 자신의 기지.
무너진 방어선, 흩어진 연맹원들,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들.
그 앞에서 아주 작게, 웃었다.
기쁘거나 유쾌한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래. 모른다면 배우면 되지. 싸움은 아직 안 끝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