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문데. 힘의 대가
연맹 요새 북쪽.
굉음이 하늘을 찢었다.
핸콕을 위시한 UFS의 총공격이었다.
기지 하나가 무너졌고,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지원 요청을 받고 달려가던 길이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잔해 속.
무전기에 미약하게 남아 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데님… 여기, 아직…”
할룩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곧 잡음에 덮였다.
“……늦었어.”
문데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붕괴된 지붕 아래, 뒤틀린 철골들 속에서 사라져 간 이름 하나.
그의 손끝이 조용히 떨렸다.
곧이어 또 다른 신호음이 울렸다.
소우주의 목소리. 헐떡임을 가까스로 참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해… 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역시, 더는 응답하지 않았다.
문데와 함께 긴 밤을 지새웠던 동료들.
각기 다른 개성, 각기 다른 자존심.
그리고 지금은, 하나둘 이름이 지워지고 있었다.
“문데님, 핸콕 부대 다음 기지 도달까지 1분입니다.”
“탄약창고 한계입니다. 이제는,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
“…명월은? 아직 연락이 안 되나요?”
문데는 눈을 감았다.
명월.
93차원의 최초 1위. 연맹 전체를 전장에서 지휘했던 자. 누구보다 강했고, 누구보다 앞에 섰다.
죽음.
베를린 전선에서 단독으로 도시를 장악했던 최고의 공격자.
그들은 떠났다. 조용히, 이유도 남기지 않은 채.
그들이 남긴 말은 지금도 그의 기억을 떠나지 않았다.
“쉽게 이겨버리면, 전장이 재미없어진다.”
— 명월
“블루 젬스톤을 경계해. 그건 중독이야. 한 번 맛보면, 절대 돌아갈 수 없어.”
— 죽음
문데는 그 말들에 동의했다.
아니, 동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혼자였다.
의지하던 강자들은 사라졌고,
남은 연맹원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전장은 그에게 남겨졌다.
그러나 그 곁엔, 더 이상 함께 걸을 자가 없었다.
혼자가 되기 싫어서 떠났던 길은,
결국 또 혼자가 되어 있었다.
다만 이번의 고독은, 누구의 배신도 잘못도 아닌—
책임의 이름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창고로 향했다.
손을 뻗었다.
푸른 빛의 젬스톤.
SSV의 창고 가장 깊은 곳,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누구나 쓸 수 있었지만 아무도 쓰지 않던,
힘이자 저주였던 그것.
문데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주저하지 않았다.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
푸른 빛이 그의 손을 타고 기지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문데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꺼졌다.
* * *
눈을 뜬 순간,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폭격기들이 하늘을 갈랐고, 탱크는 산처럼 굳건했다.
폭격은 지도 전체를 가로지르며 적의 머리 위에 정밀하게 쏟아졌다.
“레벨 35… 전투기 맞습니까? 저기까지 도달하다니, 폭격반경이 미쳤습니다.”
“탱크 45? 맙소사. 이건 그냥, 괴물이에요.”
연맹원들이 눈을 크게 뜨고 제마다 떠들었지만 문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휘탑에서 그가 움직이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번 나타났다 사라지면, 그 자리에 있던 적군은 말 그대로 ‘증발’했다.
누군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전장의 흐름이, 바뀌었어.”
* * *
그날 이후, 핸콕은 더 이상 전면전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보호막 안에서 조용히 은신했고,
지나가는 비행중대만 요격하며 전장을 우회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문데는 용납하지 않았다.
“좌표 110:247, 30비행중대 공격 감지. UFS 소속. 핸콕입니다.”
“확인. 출격합니다.”
문데는 핸콕의 전투기가 나타나자마자 날아올랐고,
그가 다가오는 경로에는 이미 모해가 기지를 심어놓고 있었다.
[주차금지구역]
[핸콕 성질 : ON]
[기억력 없음. 자존심도 없는듯.]
조롱은 이어졌지만, 모해의 기지는 예전처럼 폭발하지 않았다.
도발에 걸려 공격하러 나온다면 파괴될 것이니까.
그리고 어느 날,
핸콕의 보호막이 풀린 순간,
문데는 그의 기지를 단 1회 공격으로 파괴했다.
잿더미만 남은 폐허. 그곳에 더는 불러야 할 이름은 없었다.
“끝났습니다.”
“조용히 무너졌네요. 싱겁긴.”
“웃으셔도 됩니다, 문데님.”
문데는 웃지 않았다.
그는 말 없이, 잿더미 앞에 멈춰 섰다.
마치 그 자리에 누군가를 묻은 사람처럼.
“돌아가자.”
* * *
그날 밤.
문데는 젬스톤이 놓여 있었던 창고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품 속에서 젬스톤을 꺼내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이제, 이 힘을 원할 때마다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무엇인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 빛이 조금 시렸다.
“…승리라고 불러야 하나.”
그는 조용히 읊조렸다.
전장을 바꾸었다. 연맹을 지켰다.
하지만 그 끝에, 너무 많은 이들이 사라졌다.
연개소문. 소우주. 일본파워. 감초쓰. 카이피. 왕자. 힐레이크.
데데. 할룩. 아이리쉬. 망이말랑. 게임사령관. 아주르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도,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젬스톤의 힘은 대가를 요구했다.
그는 그 힘을 쓰는 날이면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반드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지 못하는 시간 동안에도 차원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그러므로 문데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의식을 잃기 전에.
사람을 잃기 전에.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알림이 떴다.
[4주 후, 93차원과 109차원이 병합됩니다.]
또 다른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문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에 피로와 결의가 동시에 스며 있었다.
“앞으론, 아무도 잃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