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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서버 SSV 이야기 외전1

[174] ︻l▄▅▆▇◤MUNDE
2025-04-08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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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사라진 이름

 

SSV 회랑 뒤편, 창고를 개조한 작은 바.

연맹 회의보다 더 오래, 더 치열하게 자리를 지키는 두 사람.

문데와 콘트라베이스.

전투가 없는 밤이면, 둘은 꼭 이곳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래서 말인데,”

콘트라베이스가 잔을 돌리며 말했다.

“그 죽음이여, 진짜였던 거 맞냐?”

 

문데는 짧게 웃었다.

“진짜 ‘죽음이여’는 아니었지. 그건 워머씽이었어.”

 

“뭐? 우리 기지를 그렇게 두들겨 팬 놈이 도용범이었다고?”

“정확히는… 탈취범이라고 해야겠지. 이름을 훔쳐낸 거니까.”

 

문데는 천천히 잔을 들어, 콘트라베이스의 잔과 가볍게 부딪혔다.

탁.

짧고 무거운 소리가 잔 안에 퍼졌다.

 

“원래 ‘죽음이여’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이 쓰던 거였어. 전투력 좋고, 집중력도 뛰어났지. SSV만이 아니라 TOV쪽에서도 죽음이라고 부르기 보단 사신이라고 별명을 부르던 사람.”

 

콘트라베이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왜 ‘아이는매가약’ 같은 이름으로 기고 있었냐?”

 

문데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답했다.

“워머씽이랑 싸웠어. 이유는 모른다. 아무도 말 안 해줬거든. 그냥, 어느 날 이름을 바꿨더라고.”

 

“지는 바람에 이름까지 뺏긴 거야?”

“아니. 순서가 좀 달라. 사신 죽음이여가 자기 이름을 바꿔서 먼저 조롱했는데… 워머씽은 그걸 순식간에 훔쳐냈어. 그리고—”

문데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 이름으로, 사신 죽음이여의 연맹을 박살냈지.”

 

잠시, 둘 사이에 짧은 정적.

그리고 콘트라베이스가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그 연맹이 우리였냐.”

 

문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SSV.”

 

“젠장…”

콘트라베이스는 잔을 내려치듯 탁, 내려놓았다.

“우린 그 놈을 진짜인 줄 알고, 사신이라 불렀던거네. 신나게 얻어맞았어.”

 

문데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웃었다.

“웃을 일은 아니지만… 나만은 좀 달랐지.”

 

“뭐?”

“나, 사실 워머씽 팬이었거든.”

 

“…뭐라고?”

콘트라베이스가 술잔을 멈췄다.

 

“워머씽 이름을 쓸 때였으니까 꽤 오래 전이야. TOV 도시전에서 처음 만났는데, 내가 전력 풀로 때렸는데도 꿈쩍도 안 했어. 진짜, 아무렇지 않게 나 쓱 한 번 보더니 그냥 가더라.”

 

문데는 웃었다.

“그날 바로 팬레터 썼지. ‘저는 오늘부터 워머씽님 팬 1호입니다’라고.”

 

“…진짜 제대로 곱게 돌은 미친 새끼.”

“인정.”

“팬레터 받고 뭐라 하던?”

“아무 답도 못 받았어.”

 

두 사람은 큭큭 웃음을 삼키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문데가 낮게 덧붙였다.

“진짜, 그러니까 사신 죽음이여는... 좀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지.”

 

“조용한 스타일 아니었어?”

“그런 줄 알았는데, 꽤 성격이 강하더라고. 확성기로 ‘넌 죽을 때까지 칠 거다. 각오해라’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 지나가다 들었지.”

 

“어우. 무서운데.”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문데는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때 회의에서 워머씽 얘기 나왔을 때, 내가 ‘한번 영입해보자’고 했거든. 그 다음날부터… 죽음이여가, 아니 ‘아이는매가약’이 사라졌어.”

 

“…진짜 웃긴 타이밍이네.”

“나도 좀… 찝찝했어. 말은 안 했지만.”

 

콘트라베이스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 이름을 쓴 사람들. 둘 다 사라졌네.”

 

문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이여도, 워머씽도. 요즘은 어디에서도 안 보여.”

 

“그래도 이름은 남았지.”

콘트라베이스가 말했다.

 

“그러네.”

문데가 대답했다.

 

잠시 잔을 기울인 뒤, 콘트라베이스가 물었다.

“근데 문데, 그때 너는 왜 그 자식한테 안 맞은 거냐. 다 터졌는데, 너 혼자 멀쩡했잖아.”

 

문데는 술잔을 내려다보다, 아주 느리게 말했다.

“…그날, 이상하게 나만 안 치더라.”

 

“왜?”

“몰라.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날의 팬레터 때문이었을까.”

 

콘트라베이스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걸로 살아남은 거면… 진짜 네 인생 최고의 팬레터네.”

하고는 피식 웃었다.

 

문데는 말없이 잔을 비웠다.

그 날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는데, 자신만 멀쩡하다는 사실은 이상할 정도로 포근했고,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왔다.

 

“짜식, 죽상은.”

 

“…죽은 사람 얘긴, 기억해줘야 하잖아.”

문데는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가끔, 싸움은 끝나도… 이름은 남잖아.

그게, 슬프고… 멋지고, 그래.”

 

콘트라베이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잔을 문데의 잔과 맞부딪쳤다.

 

탁.

작은 유리잔 소리가, 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