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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서버 SSV 이야기 외전4-1

[174] ︻l▄▅▆▇◤MUNDE
2025-04-1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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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4-1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어

 

그날, 나는 핸콕에게 초대받았다.

 

93차원의 미래를 위한 회의. 참석자는 다섯이었다. 

핸콕, 고고, 소렌즈, 블라스터, 그리고 나.

 

회의는 조용히 시작됐다. 

모두가 조심스러웠다. 

이 회의의 목적이 대화인지, 경고인지, 아니면 협박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번 분쟁은 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핸콕이 먼저 운을 뗐다. 차원의 새로운 1위의 자격으로, TOP의 대표로, 중재자라는 이름으로 그는 회의장을 만들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저는 연맹장도 아닙니다만.”

 

핸콕은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말이 통할 만한 사람 하나는 있어야죠.”

 

그 말을 듣고, 나는 우리 사이에 옛 동료로서의 신뢰가 남아 있다 생각하며 살짝 미소지었다.

 

UFS의 연맹장, 블라스터가 말을 꺼냈다. 

“우리는 지난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하지만 원인을 제공한 쪽의 사과가 없다면,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가 말한 ‘사태’는, 명월과 엘차포의 갈등이었다.

 

발단은 자원지 충돌이었다. 

당시 SSV 명월과 UFS 엘차포가 동시에 유전 점령을 위한 부대를 보냈고, 명월이 그것을 점령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엘차포는 채팅창에서 명월에게 심각한 욕설을 퍼부었다. 

26레벨에 불과한 병사가, 차원 1위를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명월은 질 낮은 욕설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주일 동안 UFS 연맹 전체를 정찰했다.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는 대원수 고고의 뜻을 알고 있었고, 연맹의 뜻을 기다렸다. 

그때 SSV는 UFS와 동맹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러나 회의에 명월은 초대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 자리는 명월에게 더 어울린다고.

그를 대신해 앉아 있는 내가 그 무게를 대신 짊어져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엘차포의 욕설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신들 역시 정식 사과 없이, 정찰 중인 1위에게 항공폭격을 계속했죠. 또한 이 일과 상관없는 이들에게도 지속적으로 폭격을 가했습니다. 협상을 말하기 이전에, 예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블라스터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자위권 행사였습니다. 다만… 우리가 도시 하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베를린 전투 참여의 제한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이 자리의 핵심은 사과도, 명예도 아니었다.

 

대도시.

당시 93서버의 대도시는 네 곳. 70s가 하나, KRS가 하나, 그리고 SSV가 둘을 가지고 있었다. 베를린 전투에 참여하려면, 대도시의 소유가 필수였다.

UFS는 SSV의 적인 ASY에서 갈라져 나온 10명의 신생 연맹이었다.  구성원의 역량도 평균일 뿐, 상위 랭커도 없었다. 그런 그들이 대도시를 요구한 것이다.

70명을 품은 1위 연맹이 단지 몇 번의 항공폭격에 대도시를 넘기는 행위란, 그건 양보가 아닌 굴욕과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시는 결코 양보할 수 없습니다.”

 

고고는 내 말에 동의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소렌즈는 나를 바라보았다. 블라스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핸콕은 침묵했다. 

회의장의 문은 조용히 닫혔다.

 

 

대도시는 단순한 거점이 아니었다.

베를린 전투의 자격 조건이자, 연맹 전투력을 뒷받침하는 핵심이었다.

 

도시 하나가 주는 자원과 지원 효과는 막강했고,

그건 하루 이틀로 평가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두 개의 도시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내놓는다는 건 단순한 양보가 아니었다.

 

더욱이—그걸 누구에게 넘기느냐는 선택은 더 중요했다.

 

폭력으로 무언가를 얻는 전례를 남길 순 없었다.

우리에겐 NIC, ger, ult처럼 우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연합 동맹이 있었다.

도시를 나눠야 한다면, 그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했다.

 

협박이 아니라, 협력에 응답하는 것.

그건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질서를 원하는지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뒤, 핸콕은 내게 말했다. 

“그가 진짜 도시를 원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는 나를 초대한 그 역시 함께 있었다. 

모든 기록이 모든 사실을 말해주고 있건만—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내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끊어졌다.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의 연맹원들은 ‘평화가 거절당했다’고 믿었고, 

우리는 ‘도시를 빼앗으려는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진실은 회의록 안에 모두 담겨 있었지만, 

블라스터는 ‘대도시’라는 자신의 요구를 UFS에 알리지 않았다. 

그는 그저 “SSV가 사과를 거절했다”며 전쟁을 정당화했고, 

UFS의 연맹원들은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저, 전장의 장기말처럼 UFS의 연맹원들을 배치했다.

이용당하고 있는 UFS의 일반 연맹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려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격렬한 욕설로 우리를 비난했다.

 

회의록을 공개했음에도 보려 하지 않는 이들. 

사실을 적시해도 다른 것을 보는 모습. 

 

그게 내가 UFS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그리고—알게 되었다.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자들이 있다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