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게요
시간이 흘렀다.
차무식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사고를 쳤다.
그리고 나는 늘 그 뒤를 따라다니며 수습했다.
분명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맹 사람들도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식님 또 나갔어요?"
"이번엔 뭐가 맘에 안드셨을까요?"
"아뇨."
"이번에는 먼저 시비걸린것 같습니다."
심지어 적들도 알았다.
차무식은 이유 없이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은 적 연맹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쟤는 건들지 마."
누군가가 캡쳐를 올리자 모두가 웃었다.
"이제 적들도 무식님 성격 다 안다."
"건드리면 끝까지 간다는 걸 알잖아요."
차무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전장으로 걸어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뒷모습이었다.
---
나는 전투력 순위표를 열어봤다.
1위.
2위.
3위.
...
20위.
차무식.
전투력 순위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차원전이 시작되면 순위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무식님 어디 계세요?"
"무식님 벌써 들어가셨어요."
"또 혼자 먼저 들어가서 싸우고 계십니다."
그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투덜거렸다.
"형은 제발 혼자 좀 가지 마세요."
차무식은 늘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문데님이 언제나 바로 따라오시잖아요."
"..."
"먼저 가 있을게요."
나는 피식 웃었다.
"또 혼자 가시려고."
차무식도 웃었다.
"기다릴게요."
그 말은 늘 장난처럼 가벼웠다.
언제나 먼저 전장으로 들어갔고,
나는 언제나 조금 늦게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면 그는 늘 거기 있었다.
불타고 있든,
싸우고 있든,
적을 쫓고 있든.
어쨌든 그곳에 있었다.
---
그무렵의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부담을 혼자 안고 있었다.
차원 전투력 1위이자, 연맹의 리더인 나는 흔들리면 안 됐다.
사람들 앞에서는 늘 의연해야 했다.
언제나
'괜찮습니다.'
'우리가 이깁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나였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었던 사람도 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차무식은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새벽.
정예 집결을 마치고 사람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들 무렵이었다.
짧은 메세지가 도착했다.
> 문데님.
> 혼자 다 짊어지지 마세요.
손이 멈췄다.
한참 동안 그 두 줄을 바라봤다.
평소 같으면,
> 문데님, 먼저 갑니다. 기다릴게요.
> 벌써 포기하시는 겁니까? 한 놈만 더 잡죠.
이런 말만 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 형이 사고만 안 치시면 됩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 그건 어렵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날은 잠이 잘 왔다.
---
평화로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도 차무식이 연맹 마크를 떼고 사라졌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그래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맹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리더."
"무식님 왜 나갔어요?"
"싸운 겁니까?"
"무슨 일 있었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메세지를 보냈다.
> 형님.
읽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보냈다.
> 어디세요?
한참 뒤에야 답장이 왔다.
> 그냥 혼자 좀 놀겠습니다.
짧았다.
평소처럼 덤덤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설었다.
그날 이후 차무식은 연맹 마크 없이 전장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말했다.
"연맹도 탈퇴하고 마음대로 다니네."
"연맹장 말도 안 듣네."
"대장님, 그냥 두실겁니까?"
나도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연맹 마크만 없을 뿐이었다.
차원전에서는 여전히 가장 먼저 싸웠고.
여전히 가장 끝까지 남아있었다.
욕은 혼자 먹었고.
책임도 혼자 졌다.
형은 연맹 마크를 떼고, 자기만 앞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혹시.
연맹에 피해를 주기 싫어서,
내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일부러 혼자가 된 건 아닐까.
하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
굳이 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형은 형 방식대로 싸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걸로 충분한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