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미안해
차원 통합 이후,
결국 일이 터졌다.
차무식과 GEp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작은 마찰은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차무식은 GEp 연맹원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 번 치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었다.
상대가 도망가면 따라갔다.
보호막이 끝나면 다시 찾아갔다.
GEp는 차무식을 차원 전체의 적으로 규정하고, SSV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욕과 비난, 조롱이 오갔다.
차원 전체는 전쟁터가 되었다.
나는 그간의 대화 기록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잘못은 분명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적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내 사람이었다.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 문데입니다. 서로간 악감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당분간 날선 욕설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피해를 보신 분들의 자원은 제가 모두 보상하겠습니다. 또한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GEp 분들은 SSV로 이동해 주십시오.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개인의 일탈로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
연맹을 떠난 사람을 위해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했다.
리더가 거기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적들은 비웃었다.
> SSV는 또 저런다.
> 입으로만 사과하고 GEp 인원을 흡수하려는 더러운 계략이다.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동안에도 서로를 향한 공격은 계속됐고,
모두의 감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메세지를 남겼다.
> 부디 저를 봐서라도 분노를 조금만 가라앉혀 주십시오.
> 모두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 모든 분들께 죄송합니다.
메세지를 남기면서도 내 시선은 계속 차무식의 좌표를 따라가고 있었다.
—
공개적으로는 단호하게 말했다.
> 무식님.
> 분쟁에 휘말린 인원들이 제 연맹 안에 들어온 이상, 그들의 거취는 제가 결정합니다.
> 아시겠지만 이번의 분쟁과는 상관없이, SSV와 GEp는 차원 병합 이전부터 통합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한 연맹이 될겁니다.
> 연맹원들은 보호막을 치라고 하겠습니다.
> 대신 저를 공격하세요. 저는 방어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맞는 것보다,
내가 공격당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공개적으로는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나는 개인 메세지를 열었다.
> 형님. 돌아오세요.
> 속상하신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끝낼 일은 아니잖습니까.
> 생긴 불화는 제가 모두 수습하겠습니다.
답은 없었다.
조금 뒤 다시 보냈다.
> 형님.
> 답 좀 주세요.
나는 몇 번이고 메시지창을 열었다 닫았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답이 왔을 시간이었다.
늘 짧게라도 답해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차무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전장을 떠돌며,
계속 사람들과 싸웠다.
그리고 어느 날,
차무식은 눈에 보이는 모든 기지를 공격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 SSV 농장이면 본인 이름 적어놓으세요.
SSV마저 공격대상으로 삼겠다는 그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 그래도...
> 마음속에는 우정이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 아니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차무식은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던 말을 계속 남겼다.
> ...아는 분들 것은 먹기가 좀 그렇네요.
변명도 하지 않았다.
포장도 없었다.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면서도,
그들의 것만은 차마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망설임이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좌표를 따라갔다.
그는 내가 있는 곳을 피하듯 계속 움직였다.
내가 따라가면 그는 다른 곳으로 갔고,
다시 따라가면 또 멀어졌다.
나는 거의 매달리듯 말했다.
> 나랑 놀아요.
> 나랑 놀자니까 자꾸 어디 가요.
겉으로는 싸우자는 말이었다.
사실은 돌아오라는 말에 가까웠다.
> 사과하세요.
> 사과하세요.
> 사과해요.
나는 그에게 사과하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참아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치밀었다.
한참 말이 없던 그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 SSV 외국인 친구들 정말 미안해요. 쏘리.
예전과 같은 말투에
나도 모르게 바로 대들듯 따졌다.
> 왜 그 사람들한테만 사과해요.
> 나한테 사과해야지.
> 빨리요.
나는 기다렸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 답 느린 것 좀 봐라.
> 내가 손목 빨리 치료하라고 했죠.
> 스테로이드 주사는 맞아봤어요?
그는 예전부터 손목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특히 전투를 오래 하면 손이 심하게 아프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언제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잔소리를 했다.
손목이 걱정돼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무슨 이야기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 닉네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지?
> 고맙고 미안해.
> ...어쩔 수 없네.
나직한 사과의 말이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답을 보냈다.
> 알았어요.
잠시 바라보다가 한 줄을 더 보탰다.
> 존경했어요.
보내고 나니 과거형이라 마음에 걸렸다.
> 지금도 그렇지만.
내게 차무식은 여전히,
새벽마다 가장 먼저 전장으로 뛰어가던 사람이었고,
혼자 다 짊어지지 말라고 말해주던 사람이었고,
언제나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던 사람이었다.
이상한 예감이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 저 말 많은 두 명 보내고
> 조용히 있다가 접으려고 했는데.
> 안 도와주시네.
그제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차무식은 오래전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억지로 정을 떼어내고 있었다.
사람들과 싸우고,
욕을 먹고,
돌아갈 자리까지 스스로 없애면서.
서로에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는 모든 것을 정해 놓고 있었다.
> 제 버팀목 세 분 중 한 분인데요.
> 오세요. 술이나 한잔하시죠.
> 지금 어디신지 알려주시면, 제가 가도 됩니다.
얼굴을 마주보고,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면,
이렇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차무식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누구나 볼 수 있었고
누구나 말을 보탤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마치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짧은 문장이 도착했다.
> 일단 늦었으니.
> 저는 좀 쉬겠습니다.
나는 평소처럼 답했다.
> 쉬세요.
덧붙이지 못한 말들은
머릿속을 맴돌다 조용히 사라졌다.
차무식은 늘 먼저 전장으로 향했다.
불타고 있든, 싸우고 있든, 적을 쫓고 있든,
내가 뒤따라가면 그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날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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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두 시간마다 정예는 떴고, 집결령은 올라왔고, 사람들은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자리는 끝내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